▲ 학생들이 선생님과 상의하며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몸에 익은 상상과 민주성

5학년 수업시간. 역사와 미술과목을 통합으로 가르친다. 수업주제는 ‘고려시대 역사책 꾸미기’다. 고려시대를 학습하고 그 내용을 미술적으로 표현해보는 일이다. 17명의 학생들이 빙 둘러앉아서 각자 배운 내용을 도화지에 표현한다. 역사책에 나오는 이미지를 복사해서 종이에 붙이고 설명을 곁들인다. 종이를 접어 각 면마다 역사변천 순서대로 핵심적인 내용을 적기도 한다. 한 학생이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내용을 그대로 적어 넣는다. 그러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따와서 기록할 땐 빼놓아서 안되는 게 뭐지요?” 묻는다. 그러자 학생들은 동시에 “출처를 밝혀요”라고 대답한다. 지적을 받은 학생은 “아차, 그렇지. 까먹었네”하며 출처를 적시한다.

이어 선생님이 전지 크기의 양면에 그려진 ‘유물과 유적지 찾아보기’라는 제목의 ‘역사지도’를 제시하며 묻는다. “이걸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묻는다. “양쪽에 고리를 걸어서 앞뒤를 볼 수 있게 해요” “한 사람이 들었나 놓았다 해요” “간판같이 길다란 곳에 붙여서 언제라도 보게 해요” “거꾸로 들어 역사를 거꾸로 봐요” 등 생각들을 쏟아낸다. 의견을 취합한 선생님은 각자의 제안에 투표로 결정하도록 한다. 자유로운 상상과 민주적인 과정이 몸에 익는 모습이다. 수업 종료시간이 임박하자 선생님은 알림장을 내라고 한다. 역시 학생들은 “조금만, 쉽게, 오늘은 쉬어요” 등 귀여운 반발을 쏟아낸다. 교사와 학생간에 오랫동안 다져온 친근감이 묻어난다.

강민호 학생은 “작년보다 진짜 좋아졌어요. 시험을 안보니까요. 대신 동아리활동을 많이 해요. 야영도 두레도 재밌어요”라며 스트레스가 없어진 환경에 만족스러워했다.

독특한 자연탐사대-스키-두레활동

구천초는 학내외의 여건에 따라 몇 가지 독특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선 덕유산 자연탐사대 활동이다. 수려한 자연환경을 충분히 맛보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놀토’가 되면 학생들은 덕유산으로 떠나 자연을 살피는 탐사대로 활동한다. 주변의 여건을 보면 생태체험에는 안성맞춤이라는 게 송명철 교장의 설명이다. “학부모의 절반 이상이 타지에서 왔어요. 관광업 종사자가 많고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지역의 강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교가 나서 아이들이 자연을 충분히 즐기고 살피는 계기를 제공할 의무가 있어요. 학부모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또 겨울에는 무주리조트가 있다는 특성을 살린다. 모든 학생들이 스키를 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키대여를 직업으로 하는 학부모가 많은 점도 강점이다. 매년 겨울이면 이틀 이상 스키를 타도록 한다. 자주 익히다 보니 동계체전에서 참가해 메달을 획득하는 학생도 나오고 있다. 내친 김에 이 학교는 스키를 육성종목으로 삼고 있다.

학생들의 자치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원활한 자치활동을 위해 지난 해 12월 각 반에서 회장과 부회장을 선출, 겨울방학동안 리더십 교육을 시켰다. 박인순 교감은 “처음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낯설어하고 서툽니다. 다(多)모임 때 스스로 토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겁니다”며 연습과 훈련의 가치를 중시했다.

이와 함께 나눔, 배려, 협동을 중시하는 ‘두레’활동을 통해 리더의 역할을 바꿔보며 조직에서 역할과 기능을 터득하기도 한다. /박규만 기자 pkm@sjbnews.com

	▲ 박인순 교감

5년전 이 학교로 부임한 박인순 교감의 주거공간은 관사다. 방바닥에 ‘개미’가 득실거리는 등 건물이 노후됐으나 학생들을 더 살피는 기회가 된다는 데 높은 만족감을 표시한다.

△ 혁신학교로서 어려움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자는 뜻으로 안다. 떳떳하지 않은 건 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한다. 더욱 지원하고자 한다. 다만 혁신학교, 방과후 학교 등으로 나뉘어 ‘한 교실 딴 예산’으로 혼선을 겪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 시험없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학생은 좋아하지만 학부모 등 주변에서는 우려도 표시한다. 시험과는 다르지만 적정한 평가기법을 활용한다. 성적과 학력은 다르다. 특히 상급학교에 진학해서도 학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 고유의 체험프로그램이 많은데

교육과정을 중시하는 만큼 체험행사도 강조한다. 이 학교만의 프로그램으로 일반 학생이 익혀야 할 보편성과 이 지역 학생만의 특수성을 고루 갖추기 위해서다.

△ 교장과 교사간 가교역할을 맡고 있다

교사들이 너무 적극적이다. 혁신학교로 지정되지 않아도 될 만큼 열성이 높다. 그러다보니 가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직진보다 좌우를 살피자는 뜻이다. 교장의 이해도가 높아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 방과후활동은 어떻게 하나

미술, 음악, 체육 등을 1주일에 한 번 정도다. 적은 횟수에 비해 집중력과 효과가 떨어진다. 그래서 영어, 수학, 독서논술 등은 집중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 최국희 학부모회장

펜션을 운영하느라 자녀 교육은 물론 학교일을 제쳐뒀던 학부모회장이 올해부터 학부모회장직을 맡았다. 처음 맡다보니 다소 힘겹다. 하지만 특유의 열정으로 발품으로 학부모가 하나가 되고 참여율도 늘고 있다.

△ 자녀의 태도에 변화가 있는가

요즘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 아침이 되면 신이 난다. 학교에 빨리 가고 싶어한다. 표정도 달라졌다. 무척 밝아졌다. 특히 시험에 매달리는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학교 보내는 맛이 난다.

△ ‘스스로 학습’이 필요한데

그렇다. 예전에는 학교가 끝나면 여기저기 돌렸다. 하루가 빠듯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지 스스로 공부하려고 한다. 일정도 스스로 짠다. 모르는 것만 가르쳐준다. 이게 ‘자기주도학습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학부모 모임은 자주 갖는가

학부모끼리 매달 지정한 날에 마을 도서관에서 모인다. 수업, 급식, 시설 등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선생님과 미팅을 갖는다. 대화를 자주 하다보니 서로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

△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준다는데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아이들이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아직까지는 몇 명만 참여한다. 앞으로는 모든 학부모가 번갈아 읽어줄 수 있도록 정례화할 계획이다. /박규만 기자